네가 없는 세상에 내가 존재할 이유는 없었다. 혜진은 오늘도 멍하니 열린 창밖을 보기만 했다. 낮임에도 어두운 방 안 한 구석에 걸린 벽시계의 시곗바늘만 거슬리는 기계소리를 내며 바삐 움직였다. 창문에 점점이 떨어지며 톡톡 소리 내는 물방울들을 보며 아, 비가 오는구나. 하고 생각할 뿐 방 안을 젖게 만드는 창문을 닫을 생각은 없었다. 거세진 빗줄기가 창틀에 부딪혀 혜진의 얼굴에 차가운 저의 온도를 자랑하고서야 혜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창문을 닫았다. 쏴아아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내려다보며 혜진은 문득 저 비를 흠뻑 맞고 싶다고 생각했다. 그 허무맹랑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까지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. 대충 검은색 트레이닝 복을 위아래 걸쳐 입고 슬리퍼에 대충 발을 끼운 뒤 문을 열었다..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