연재/오션스8

[데비루] 처음

한율 픽 2018. 8. 5. 22:37


w.오율


나의 처음은 언제나 최악이었다. 첫 친구는 남을 뒤에서 헐뜯는 것을 좋아했고, 첫 학교는 비리와 학교 폭력의 온상이었으며, 첫 시험은 너무 긴장한 탓에 아무것도 쓸 수가 없어 낙제를 받았다. 첫 키스는 상대가 먹은 이름 모를 해산물 때문에 비린 맛이 가득했고, 첫 섹스는 이렇다 저렇다 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었다. 그러고도 나는 또 하나의 처음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.

 데비.”

 ?”

 우리 사귈까?”

 첫 고백이다. 아마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다.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 내뱉은 고백은 기나긴 침묵이 되었다. 바닥에 둔 내 시선에 데비의 신발이 사라지지 않았으니 데비는 최대한 나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 거절의 말을 고르고 있을 것이다. 어떤 말이든 거절인 것은 변함없을 것이다. 손 끝이 제멋대로 꼼지락거렸다. 침묵이 길어지는 만큼 시야가 흐려졌다. 아, 데비 앞에서는 울고 싶지 않았는데. 입술을 꾹 깨물고 눈에 힘을 줬다. 제발 데비가 떠나기 전까지는 흐르지 말아줘.

 "......루."

 울음 섞인 목소리를 내고 싶지 않아 침을 꿀꺽 삼켰다. 침에서까지 쓴 맛이 나는 기분이다.

 "...응."

 "고개 들고 나 좀 봐줘."

 목소리는 언제나와 다름없이 다정했다. 결국 숨이 터져버렸다. 상의 끝자락을 조물대던 손으로 눈을 가렸다. 입으로는 울음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. 따듯한 손이 부드럽게 내 손을 붙잡아왔다. 조금은 단호하게 눈물 범벅인 눈에서 손을 떼어낸다. 짙은 향을 내며 닿았다 떨어지는 데비의 향은 착각이 아니었다. 내쉬는 걸 잊었던 숨이 제 호흡을 되찾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됐다. 데비의 발 끝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들었다. 데비의 얼굴은 조금 붉었고, 미소를 짓고 있었다. 호흡이 다시 막히는 기분이었다. 아직 붙잡고 있던 손을 움직여 깍지를 끼고는 말했다. 깍지 낀 손에서는 내 것인지, 데비 것인지 모를 땀이 젖어 들었다.

 "루... 네가 고백한게 너무 기뻐서 뭐라고 대답을 해야 될지 모르겠어..... 음.. 키스해도 괜찮을까?"

 다시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. 비참함의 눈물이 아닌 행복함의 눈물이. 하지만 울어도 괜찮을 것 같다.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접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데비는 같이 웃어주었다. 처음으로 최악이 아닌 처음을 경험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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