전력

19회 취사전력 구차해&부담이 돼

한율 픽 2017. 3. 13. 02:49

w.한율




  별 하나 뜨지 않은 검은 밤하늘 아래 어색하게 서있는 두 인영이 있었다. 조금 작은 인영이 큰 인영을 바라보며 한 발, 멀어졌다. 한숨을 쉬는 듯 어깨가 축 처졌다.

  "별아, 우리... 헤어질까......?"

  휘인의 목소리가 소곤대는 바람을 타고 사라지고 둘 사이에는 바람과 별만이 소란스러웠다.



  별이는 듣고 싶지 않았다. 보고 싶지 않았다. 헤어지자는 목소리를, 결국 내가 말해야하는 구나하고 죄책감과 책임감에 구겨지는 휘인의 표정을. 별이는 생각했다. 내가 조금만 덜 연락했다면, 휘인의 취향에 좀 더 맞춰줬더라면, 조금이라도 덜 부담을 줬다면. 바쁘다는데, 힘들다는데. 이별을 통보받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과거의 저 자신을 탓했다. 사실 알고 있었다. 헤어짐이 다가온다는 것을,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은 막을 수 없을 것이란 것을. 어느 순간부터 멀어지는 손길을 느꼈고 차가워진 눈빛을 보았다. 그래도 먼저 연락해주기도 하니까, 너무 힘이 들 때면 따뜻해지니까. 친구에게 얘기 해봐도 돌아오는 건 그저 진부한 위로뿐이었다.

  “난 아직 너를 사랑하는데... 더는 안 되는 거야? 그 전의 마음으로.. 돌아가 줄 수는, 아니 그냥 그런 척만이라도 해줄 수는 없는 거야..?”

  별이는 머릿속에서 나오는 대로 줄줄 읊었다. 앞에 선 휘인의 표정을 바라볼 자신은 없었다. 그리고 스스로 생각했다.

  “구차하다, 진짜...”




  휘인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. 더는 나쁜 역할이 되고 싶지 않았다. 부러 더 차갑게, 더 냉랭하게 말하고 반응하고 더 단호하게 끊어냈다. 별이가 상처 받고 지쳐서 먼저 떠날 수 있도록. 그래도 별이는 버텼다. 가끔 보이는 무기력한 표정에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이 가슴을 찔러댔지만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. 별이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. 혼자서 맥주를 마실 때면 한통씩 전화가 걸려왔지만 몇 마디 하지 않고 금세 끊어졌다. 사실 말하는 것이 무서웠다. 진짜로 모든 것이 끝이 날까봐. 주변 사람들의 냉대어린 시선은 버티기 힘들었다. 아니, 그냥 핑계를 만들고 싶어서 그렇게 느꼈을지도. 늘 다정하고 늘 웃어주는 별이가, 나만 바라보는 별이가, 너무 두려웠다. 부담스러웠다.

  “미안해, 그치만 난 네가 부담이 돼.”




  작은 인영은 서서히 멀어졌다. 큰 인영은 무어라 말을 걸려는 듯 입을 벙긋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멈춰 섰다. 작은 인영이 몸을 돌려 발을 옮기다 달려가 버리고 큰 인영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. 별이의 구차한 연애도, 휘인의 부담스러운 연애도, 모든 것이 끝이었다.